[천자칼럼] 3년만에 울리는 보신각 '제야의 종'

입력 2022-12-29 17:41   수정 2022-12-30 00:14

‘보신각 골목길을 돌아서 나올 때엔 찢어버린 편지에는 한숨이 흘렀다.’ 가수 현인(1919~2002)이 1950년 발표한 ‘서울야곡’의 한 구절이다. 서울야곡은 서울 번화가의 밤 풍경과 이별의 서정을 경쾌한 탱고 리듬에 실은 노래다. 충무로, 명동, 종로네거리 등 당대 서울의 화려한 야경을 스냅사진처럼 가사에 담았다. 쇼윈도, 그라스, 네온, 마로니에, 레인코트, 바가본드(방랑자), 엘레지 등의 외래어는 해방 후 밀려들던 서양풍을 짐작하게 한다.

보신각이 있는 종로네거리(현재의 종각역 네거리)는 예로부터 서울의 대표적 번화가였다. 한양 도성의 정문인 숭례문(남대문)을 들어서서 성안 중심으로 통하는 남대문로와 흥인지문(동대문)~돈의문(서대문)을 연결하는 종로가 만나는 교차로가 종로네거리다. 조선시대 종로 일대는 육의전을 비롯한 수많은 상점이 몰려 있는 쇼핑가였다. 사람들이 구름같이 모였다 흩어지는 거리라고 해서 운종가(雲從街)라고 불렀다.

종로네거리에 커다란 종을 매달고 시보(時報) 기능을 하게 한 것은 그래서였다. 조선 태조 때 2층짜리 종루(鐘樓)를 짓고 종을 걸었다. 궁궐의 보루각에서 자격루(물시계)가 자동으로 시간을 알려주면 경복궁 문루에서 이를 종루와 사대문으로 전파했다. 밤 10시쯤에는 통행금지를 알리는 인경(人定)이, 새벽 4시에는 통금 해제를 알리는 파루(罷漏) 종이 울렸다. 임진왜란 때 종루가 소실된 후 광해군 때 단층 종각을 지었고, 1895년 고종이 ‘보신각(普信閣)’이라는 편액을 내렸다. 도성의 사대문에 유교 오상(五常)인 인의예지(仁義禮智)를 건 데 이어 한복판인 종각에 ‘신(信)’을 넣은 것이다. 현재의 종각은 6·25전쟁 때 파괴된 후 옛터 옆에 1980년 중건한 2층 누각이다.

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보신각 타종 행사가 코로나19로 중단된 지 3년 만에 재개된다. 10만 인파가 몰릴 것으로 예상돼 서울시가 안전대책을 단단히 세웠다지만 더 중요한 것은 시민 각자의 안전의식이다. 제야(除夜·섣달 그믐날 밤)에 울리는 33번의 종소리에는 국태민안의 염원이 담겨 있다. 보신각 종소리와 함께 국민 모두가 경제위기의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기원한다.

서화동 논설위원 fireboy@hankyung.com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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